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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오카 소하치 대하소설 - 대망(도꾸가와 이에야스) 2부 16~20권 시작..

 

어제부터 16권 시작 ....


부지런히 읽어서 3부 23권까지 가능하면

 5월 안에 끝내길 ....


<19권- 히데요시의 조카 칸파쿠 히데츠구의 할복과 그 처자들의 처형>


(축생 무덤)

  히데츠구의 할복은 7월 15일 사시 (오전 10시)에 이루어졌다. 입회한 것은 후쿠시마 마사노리 , 후쿠하라 사마노스케 , 이케다 이요노카미 등 세 사람이었다.
  모쿠지키 대사가 다시 한 번 구명을 탄원 해주도록 세 사람에게 부탁했으나 그들은 한결같이 대사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 이 결정은

이미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믿는 듯. 다만  히데츠구의 할복은 타이코에 대한 불효를 사죄하기 위한 것으로,

 모반의 죄를 긍정한 것이 아니 라는 사실만은 보고 하겠다고 승낙했다.
  때는 마침 우란분재 수많은 영혼까지도 혈육을 찾는다는  날에 히데츠구는 거꾸로 황천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야마모토 토노모노스케 , 야마다 산쥬로, 후와 반사쿠 등 세 코쇼는 히데츠구의 만류에도 끝내 순사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히데츠구의 황천길에 동행하게 되었다.
  "모두 우리가 죽는 모습을 잘 보아두어라,  알겠느냐? 나의 명복을 빌고 싶다면 지금껏 나를 섬긴 자들의 목숨은 꼭 살려주기 바란다. 부디 이것만은 부탁한다. "
  히데츠구의 말에 버드나무 방에 나란히 앉아 있다가 맨 먼저 와키자시로 배를 찌른 것은 야마모토 토노모노스케였다.
  토노모노스케는 이때 열아흡 살. 와키자시는  히데츠구가 준 쿠니요시라는 명검으로, 그는 예법대로 훌륭하게 열십 자로 배를 가르고는 갑자기 오른손으로

 내장을 움켜쥐고 꺼내려 했다. 역시  마음의 불만이 젊음과 하나가 되어 폭발하려 한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히데츠구의 큰 칼이  번뜩여 토노모노스케의 목은 그  자신의 무릎에 안겼다.
  다음은 야마다 산쥬로였다. 그는 아흡치 여턴 푼인 토시로를 공손히 받쳐들고 피 묻은 칼을 손에 든  히데츠구에게 빙긋이 미소를 보낸 뒤  칼을 배에 꽂았다.

그도 열아홉 살로 토노모노스케에게  지지 않는 경쟁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역시 분사의 로습을 나타내면 안된다 싶어 히데츠구는 얼른 산쥬로의 목을 쳤다.
  세번째는 후와 반사쿠였다. 그는 열일곱 살로  당시 일본 제일의 미소년이란 말을 듣던 코쇼였다. 그런 만큼 어깨를 벗어 젖힌 하얀 살결은 남자임을

의심할 정도로 화사하여 더더구나  보는 사람의 시선을 돌리게  하기에충분했다.
  "어디에서건 끝까지 모시겠습니다. "   반사쿠는 히데츠구를 쳐다보고, 그 역시 하사받은 와키자시로 왼쪽 가슴을 찌르고도 아직 시선을 돌리려 하지 않았다.

그는 왼쪽 가슴에서부터 오른쪽 허리 부근까지 마치 즐기기라도 하듯 천천히 칼을 끌어가면서도 끝내 고통의 빛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히데츠구의 카이샤쿠를 기다렸다.
  히데츠구의 눈에 무서운 분노의 빛이 떠오른 것은 이때였다.
  "먼저 가라, 반사쿠!"
  긴 칼이 세번째로 번뜩이고, 역시 반사쿠의 목은 그의  무릎에 떨어졌다.
과연 칼을 들면 맹장, 히데츠구의 숨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총애하던 세 코쇼를 카이샤쿠하고 보니 감정의  파도는 거세어진 듯. 

누구에게 향한 것인지도 모를 분노가 피를 보고 끓어올랐을 터 .
  "내가 세 명의 코쇼를 직접 카이샤쿠한 것은 그들에게 분사의 형태를 취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미 그것도 억제하기  어렵게 되었다.
아와지 ! 나의 카이샤쿠는 그대가 하라 "
  "예."
  그대로는 분노가 터질 것 같았던 모양이다.
  네번째는 히데츠구 자신이 중간에 횐 헝겊을 감은 한 자 세 치짜리 마사무네의 와키자시를 오른손에 들고 자신의 배를 찔렀다.
  여기저기서 독경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생각한 것은  어쩌면 요란하게 울어대는 매미소리였는지 모른다 말석에  앉아 있던 승려들은 

히데츠구가 와키자시로 배를 찌르는 것과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눈을  감고 염주를 굴리기 시작했다.
  '고작 이것이 죽음이 란 말인가... '
  겨우 안도하고 평상에 걸터앉아 쉬는 듯한  안이함과, 죽어야만 하는 석연치 않은 이유가 따끔하게 영혼을 찔렀다.
  다음은 물이 밑으로 흐르듯 무사의 관습만이 뒤따를 뿐이었다.
  배를 갈라나가는 동안, 문득  내장을 꺼내 경직된 듯이  나란히 놓인 세사람의 얼굴에 뿌려주고 싶은 장난기를 느꼈다.
  '내장을 뿌려주면 마사노리 녀석은 어떤 낯을 지을까?'
  아니 , 이것이야말로 삼가야 할 일 히데츠구는 마음을 고쳐먹고 왼쪽 허리에서 오른쪽 허리뼈에 칼끝이 와닿았을 때 번쩍 손을 들었다.

 사사베 아와지노카미가 당장 칼을 내리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다려 ! 아직 열십 자로 배를 가르지는 않았다 "
  그러면서 천천히 칼을 옮겨 칼끝이  가슴에 와닿았을 때 머리를  끄덕였다.
  사사베 아와지노카미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어쩌면 눈물까지 섞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딘지 모르게 순진하면서도 난폭한, 그러기에 어리석었던 히데츠구... 드디어 평생토록 자기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타이코가 

조종하는 인형으로만 살아온 히데츠구... 그 히데츠구가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할복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에잇 !"
  아와지는 칼을 내리쳤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덜컥 떨어진 히데츠구의 목.
  "안녕히 가십시오!"
  아와지는 간발의 차도 없이 자기도 그 옆에 앉아 웃통을 벗어 젖혔다. 가엾은 주군, 어리석은 주군인 히데츠구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  역시 마지막으로 '자기 뜻대로' 자결하고 싶어졌다.
  "입회를 하느라 고생이 많소."
  웃통을 벗어 젖히고 아와지는 말했다.
  "아니 , 너나없이 모두 공연한 수고를 하고 있어 , 인생이란 것은 "
  아와지의 이 말은 그의 감정과 감회가 가득 담긴 야유였으며 조롱, 그리고 자신에 대한 위로이기도 했다.
  아와지는 칼을 그 자리에 내던지고 한 자 세 치짜리  헤이사쿠의 와키자시를 천천히 뽑아들었다. 그리고 나무공이로 떡을 칠 때처럼 두 번에 걸쳐

자기 배에 와키자시를 찔러 넣었다.  두번째는 힘 이 넘쳐  칼끝이 다섯 치정도 등으로 나왔다.
  그는 살생을 좋아하는 악동이 곤충의 다리 라도 떼어내는 듯한 표정으로 등을 뚫고 나간 칼을 다시 한 번 잡아  뺐다.

 그리고는 이 칼을 뒤에서 목에 대고 매달리듯 두 손을 얹으면서 히죽 웃었다.
  "에잇 !"
  웃는 것과 동시에 작은 기합소리와 함께 목이 무릎에 떨어졌다.
   "앗! "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스스로 자른  그 목이 , 여봐란듯이 자기  무릎에 올라 앉아 모두를 바라보았다.
  이 모습을 본 사람 중에는 그날 밤 열이 올라 앓아 누운 사람도 여럿 있었다.
  사사베 아와지노카미의 특이한 자결이 끝났을 때, 지금까지 머리를 숙이고 대기하던 류사이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반은 속인이고 반은 승려인 류사이도.
  "시신의 처리를 이 류사이도에게 맡기지 않겠소?"
  누구에게인지 모르게 말하고 대답을 기다렸다.
  세 사람의 검시자는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한 모양인지 잠시  동안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시신의 처리를 이 사람에게..."
  다시 류사이도가 입을 열었다.
  이케다 이요노카미가 당황하며 꾸짖었다.
  "얼빠진 소리는 하지도 마라. 여기는 사원이야 그리고 우리 셋은 명령을 받고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잊었느냐?"
  "그럼 , 역시 유해는 죄인으로 다스리는 것입니까7"
  "네가 그것을 물어 무얼 하겠다는 말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나도 지금부터 칸파쿠의 뒤를 따르려고 하는 자, 비록 한순간 이나마 뒤에 남은 자로서  그 후의 일을  보고 드릴 책임이  있습니다."
  류사이도는 이렇게 말하고 이요노카미를 향해 정면으로 앉았다.
  이요노카미는 혀를 차고  후쿠시마 마사노리를  돌아보았다. 마사노리는당황하여 눈을 깜박거 렸다.
  "그대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유해는 모쿠지키 대사가 정중히 장례 지낼것이다. 걱정 말고 뒤를 따르도록 하라 "
  "예. 그 말씀을 듣고 안심했습니다 그럼,이만 실례... "
  류사이도는 유유히 웃통을 벗고 다시 한 번 실내를 돌아보았다.
  "모두 용감하신 자세로 먼저 떠나셨으니 이 몸은 죽을 방법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떠나는 것이 득이었군요."
  얼빠진 듯한 표정으로 말하고, 언변에 능한  그는 와키자시로 배를 찔렀다.
  "제 생애도 이것으로 마지막...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직 미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죽지 않는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신은 모두에게 아주 공평히 죽음을 내리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어떤 죽음을 내리실것인지 , 타이코 전하께는...

사에몬다이부 님께는... 사마노스케 님께는... 이요노카미 님께는..."
  말하면서 점점 칼을 오른쪽으로 끌며 고통을 참고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역시 먼저 가는편이 득인 것 같아..."
  말끝을 흐리면서 그는 배에서 칼을  뽑아 오른쪽 경동맥에 칼날을  대고위에서 밑으로 힘껏 당겼다.
  피가 콸콸 쏟아지고, 그 피 위에 고꾸라져 숨이 끊어졌다.
  야유라고는 하지만 이처럼 통렬한 야유도 없었다.  잠시 동안 세 사람의검시자는 망연히 서서 나란히 쓰러진 시신을 바라보았다.
  각자의 장래에 큰 저주의 구름을 펼쳐 보이는 송곳날 같은 말...
  '신불은 모두에게 아주 공평히 죽음을 내린다. '
  "할복은 확인했다. 대사를 이리 불러라."
  마사노리가 생각난 듯 말했을 때 갑자기  주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납득한 듯도 하고 그렇지 않은 듯도 한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처형이었다.
  요란한 매미 소리는 아직도 온통 산을 뒤덮고 있었다.
  이에야스가 다시 에도에서 상경한 것은 히데츠구가 자결한  지 아흐레째 되는 7월 24일이었다.

 그때 이미 히데요시는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 히데츠구의 가신들을 잇따라 가혹하게 처형한 뒤였다.
  키무라 히타치노스케는 이바라키에서  자결하고, 그  아들 시마노스케는 쿄토의 키타야마에 숨어 있다가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듣고 

테라마치의 세코 사교에 들어가 자결했다.
  쿠마가이 다이젠노스케는 사가의 니손인에서 할복하고, 시라이 빈고노카미는 시죠인의 다이운인에서 세상을 버렸으며, 

아와 모쿠노카미는 히가시야마에서 자결했다. 이로써 히데츠구 가문의 부흥의 꿈은 사라졌다.
  히데츠구를 이처럼 가혹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이에야스 부자는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하나의 형벌로 처형이 내려졌을 때 그 형벌은 곧 형벌을  내린 히데요시에게 불안이 되어 돌아온다. 처벌과 양심의 악순환...
  '그도 나를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
  이렇게 생각하는 마음이 , 이윽고 그 원한이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히데요리에게 향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으로 바뀌고,  그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처벌의 그물을 넓혀 나가게 된다.
  이전의 히데요시, 곁에 동생 히데나가나 리큐  거사가 있던 무렵과는 전혀 달라진 히데요시... 가혹한 의심이 지금의 히데요시를 사로잡았다.
  히데요시는 단지 처벌의 그물을 넓히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이와 함께 천하 제후들로 하여금 히데요리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서약서를  쓰도록 엄명을 내렸다.

맨 먼저 마시타 나가모리 , 이시다 미츠나리 등이  충성을 맹세한 것은 물론이고, 이어 이에야스를 위시하여 모리 테,  코바야카와 타카카게,

 마에다 토시이에. 우키타 히데이에 등도 서약서를 바치게 되었다.
  "도요토미 가문의 후계자 히데요리에게 평생토록 변함없는  충성을 다한다..."
  이 서약서의 대상, 바로 그 히데요리는 아직 히데요시의 무릎에 안겨 겨우 외마디 소리를 낼 뿐인데도, 그 주위에서는  잇따라 어른들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히데츠구의 소실인 이치노미다이의 아버지 키쿠테이 하루스에는  칸파쿠가 진상하는 황금을 황실에 전했다는 이유만으로 에치고에 유배되었다.

다테 마사무네는 히데츠구와 빈번히 왕래했다는 이유로 하마터면 큰 화를 입을 뻔했다.
  이에야스는 상경하자마자 마사무네를 위해 힘써  변명했다. 지금 마사무네를 처벌하면 오슈에서는 큰 혼란이 일어난다. 

아직 명나라와 화의도 성립되지 않았는데 내란을 자초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의 간언을 받아들였다.
  "...그대의 목은 두 번이나 붙어 있게 됐다 세번째는 어떻게  될 것인지 ,그대도 각오해야 해."
  감정을 드러내고 마사무네를 꾸짖어, 도리어  마사무네가 대번에 이에야스 쪽과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히데요시는 히데츠구의 소실과 아이들을 한  사람도 남기지않고 산죠 강변에서 처형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타이코는  자신의 소행에 겁을 먹고 광분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키타노만도코로도 말리고 이에야스와 토시이에도 제지하려 했으나  히데요시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을 살려두면 후에 반드시 히데요리에게 재앙이 미칠 것이라고 듣지 않았다.
  쿄토 거리 에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8월 2일. 히데츠구의 소실과 아이들 38명은 그들이 유폐되어 있던 토쿠나가 나가마사의  저택에서

산죠강변으로 끌려나왔다.  히데츠구가 살아서 , 산죠 강변으로 끌려가는  자기 처첩들의 행렬을 보았다면 무어라고 했을까...?
  히데츠구는 아직도 외숙부의 진면목을 몰랐다고 이를 갈며  통분해 했을까... 아니 , 그런 모습은 결코 외숙부인 타이코만이 아니라

 일단 의심의 늪에 빠진 인간의 보기 흥한 나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날의 히데요시는 강대하고 시원스러웠다. 모든  일을 결정하고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는 확실한 자신감이 됫받침되어 풍우 속에  의연히 서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히데요시가 자신의  사후에 대한 불안에 사로 잡히고 부터는 나약한 면을 드러내고 말았다.
  "...지나치게 잔인한 일이야. 아니, 저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처형 하려는것일까?"
  "아니야, 철없는 아이들까지 죽이지는 않을 거야. 다른 곳에 옮겨 맡겨두겠지 ."
  "그래. 틀림없이 그렇게 할거야. 티 없이 웃고 있는  저 아이들의 모습을좀 보게 ."
  장남 센치요마루는 다섯 살.
  차남 모모마루는 네 살.
  삼남 오쥬마루는 세 살.
  사남 츠치 마루는 젖먹 이 .
  그리고 가마에 태워 데려온 딸 역시 겨우 동서를 구분할 수 있을까 말까한 어린 나이였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의 행렬은 오늘을  마지막으로 깨끗이 단장한  33명의 여자들과 같이 카미교에서 이치죠를 지나 산죠까지 끌려  와강변에 다다랐다.

그 모습은 아름답게 만발한 화초를  닥치는 대로 우마차에 쌓아올리는것 같은 난폭한 짓이었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염주를 걸고 있는 여자들의 모습은 더욱 애처로웠다.
  구경꾼들은 숨죽인 채 강변을 메우고 있었다.
  상대가 아녀자여서 그런지 울타리도 허술하고  경비도 엄중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들이 죽을 자리 앞에는 썩어가는 히데츠구의 목이 걸려 있지 않은가...
  처형자는 이 학살을 마음껏 쿄토 사람들에게  구경시킬 작정인 듯. 그리고 이 참혹함에 공포를 느긴  사람들에게 영원히 히데요시의 뜻을  어기면

안 된다고 위협하려는 듯...
  드디어 그 목 앞에 열 명  남짓한 망나니가 칼에 물을 뿜으면서  나란히 도열하고, 먼저 아이들부터 이름을 불러 순서대로 꿇어앉게 했다

칸파쿠의 처자...라기보다 그 부하에게 보다도  못한 천대로서 나란히  꿇어 앉혀졌을 때부터 아이들의 표정이 변했다.
  비록 동물이라 해도 도살장에 끌려가면 본능적으로 생명의  공포를 느낀다. 비명과 애원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돌리게 했다.
  아이들의 처형이 시작되고, 형장 안팎은 염불소리로 메워졌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의 생모만이 아니라 같이 죽음의 자리에 끌려온 여자들의 마지막 저항이기도 했다.
  구경꾼들도 함께 염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증오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검시를 위해 다리 서쪽 강가에 자리를 깔고 나란히 앉아 있는

이시다 지부노쇼 와 마시타 우에몬노죠에게로 돌려졌다.
  아이들의 처형이 끝나자 이치노미다이가 큰  소리로 호명되었다. 횐옷을입은 키쿠테이 하루스에의 딸 이치노미다이는 자세를 바로하고

 미리 준비했던 지세이를 가느다랗고 맑은 소리로 읊었다.
  "오래 살아 있을수록 뜬 세상인 것을  생각하면 남길 말도 없구나"

  순간 망나니가 지체 없이 칼을 내리 쳤다.
  두번째로 호명된 것은 코죠로 오츠마였다. 3품 츄죠의 딸로 열 여섯살인 오츠마는 연녹색 엷은 비단옷에 횐 하카마, 명주 홑 우치카케를 걸치고

 검은 머리카락을 반쯤 잘라 어깨에 늘어 뜨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들 앞에 걸려 있는 히데츠구의  목에 공손히 삼배하고, 지세이를 읊었다.
  "그늘질 때를 기다리는 나팔꽃에 내려 앉는  이슬보다도 덧없는 이 몸을 어찌 아까워하랴."

 그러나 지세이를 미처 다 읊기도 전에 목이 떨어졌다.
  세번째는 딸의 생모인 츄나곤  부인 오카메였다. 그녀는  셋츠 오바마에있는 진종 계통의 절에서 태어났다.

오카메는  자기보다 먼저 처형된 딸의 모습을 보기가 두려워 염주를 이마에 꼭 댄채 지세이를 을었다.
  "내가 귀의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실이 라면  이끌어 주소서 이 어리석은 몸을... "
  네번째는 센치요마루의 생모 카즈코  부인이었다 그녀는 오와리의  무사히비노 시모츠케노카미의 딸로 이때 나이 열 여덟 살.

뒤 이어 모모마루의생모가 처형되었다.
  모두 각오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한결같이 지세이를 읊었다.  그러나 그무렵부터 사람들의 귀에는 더 이상 그 읊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 때부터 구경꾼들의 분도가 이상한 형태로 형장에  분출되기 시작했기때문이다.   아무도 지금 처형되는 사람들에게 죄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다 그 유해까지 육친의 손에는 건네지 않고 동원된 히닌들의 손으로 큰 구덩이 속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런 참담한 일이 또 있을까."
  "시정배라도 이렇게는 취급할 수 없을 텐데 ."
  "염불을 하게 , 저 가련한 영혼들을 위해 .
  "그래. 이것으로 타이코 세상도  끝장이야. 이런 잔인한  처사를 신불이 용서 할 리 없어."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는 망나니들의 신경을 더욱 자극했다.
  츠치마루의 생모 오챠,  오쥬마루의 생모 오사코,  오만, 오요메, 오아코,오이마 등이 처형될 무렵에는 형장을 둘러싼 염불소리가 묘한 땅울림과도 같은 열기를 자아냈다.
  처형은 아직 오세치를 포함하여 열 여섯명에 지나지 않았다.  쇼쇼, 사에몬 미망인 , 우에몬 미망인 등의 처형이 행해진 뒤 ,

이치노미다이의 딸 오미야, 오키쿠, 오카츠시키 등 열서너 살의 젊은 소실들의 목이 잘렸다.
  가장 어린 열두 살 오마츠뒤에 망나니가 섰을 때는 어디선지 모르게 돌이 날아왔다.

우에몬 미망인의 딸이었던 오마츠가  먼저 죽은 어머니의 유해를 붙들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망나니도 당황한다. 어깨로 흘러내린 머리를 붙들어 난폭하게 쳐들고 칼을 휘둘렀다. 칼은 목에서 빗나가 어깨에 파고들었다.

한층 더 처절한 비명이 흘렀다.   당황한 망나니가 히닌을 향해 소리치고, 히닌은  살아 있는 그녀를 발로 차서 구덩이 에 빠뜨렸다.
  차례를 기다리던 오이사도 오코오도 오카나도 오타케도 도망치려는 자세를 취했다. 모두 열대여섯 살에 불과한 어런 나이였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마침내 순서가 뒤바뀌어 산죠 강변은 백일하에 지옥 그대로의 큰 혼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구경꾼들 중에는 졸도하는 자,  구호하는 자,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려는 자들이 있었다. 그런 반면 사실을 정확히  기록해두려고

부지런히 붓을 놀리는 자도 있었다 모두가 이 처형을 간담이 서늘하고 혼비백산할 사건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였다.
  처형은 2각(4시간) 남짓한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처형을 끝까지 지켜본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살아 있는 동안,

왕도에서 볼 수 없었던 이 정경에 계속 고통을 받을 것이 틀림없었다.
  "타이코가 이렇게까지 무서운 사람이란 말인가..."
  "아니 , 타이코의 지시가 아니 야. 모두 이시다 지부라는 잔인한 자가 꾸며낸 각본이야."
  "그럴지도 몰라 히데요리님 치세가 되면 천하가 모두 지부의 뜻대로 될테니까."
  보통사람들뿐만 아니라 무사 중에도 이 처형에 대한  비난을 미츠나리에게 전가하려는 자가 있었다. 아직도 사람들은  타이코가 누렸던 인기를 아쉬워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미츠나리의 입장은 아주 묘해질  수밖에 없었다. 두뇌 회전인 빠르고 오만해 보이는 성격이 사실 이상으로 사람들의 반감을 부추기고있었다.
  "들으셨습니까. 지부 혼자 도처에서 비난받고 있습니다. "
  다리 서쪽에서 검시를 하던  미츠나리가 사라진 뒤 ,  강가 다리 밑에서 처형 광경을 자세히 기록하던 무사가 삿갓을 쳐들고 그 주인인  듯한 사나이 에게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지부는  타이코에게 관록을 붙여주려고 마구  위세를 부리니까 "
  역시 삿갓 밑에서 대답하고 테라마치 쪽으로 걷기 시작한 사람은 오늘의 처형을 지켜본 사카이 타다카츠와 그 가신 스기하라 치카키요였다.
  "관록을 붙여주려고 고심하는 것도 충성이긴 하지만, 저렇게까지 미움을 받는다면 이득이 없을 텐데요."
  "그래 충성이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 가문에서도 혼다 마사노부 같은 사람이 악인이란 소리를 듣게 될 것일세 .

아니 마사노부보다도 나나 이이일지도 몰라. 어쨌든 좋아. 모처럼 이번 일을  기록했으니 주군에게 보고하기로 하세."
  이렇게 말하고 타다카츠는 안타깝다는 듯 땅 위에 침을 뱉었다.
  "전쟁터라면 몰라도, 무기도 갖지 않은  아녀자들을 저처럼 잔인하게 죽이다니..."
  "더구나 시체를 그대로 한 구덩이에 차 넣었습니다. "
  "영락없는 축생의 무덤... 속이 메스꺼워지는구나."
  "나리도 평소에는 비위가 약하시군요."
  "그보다 치카키요, 자네는 글 속에서 누구를 비난했나? 하늘인가 땅인가아니면 타이코인가 지부인가.. 또는  생모 아사이 씨인가 당사자  히데요리인가?"
  이 말에 치카키요는 혀를 찼다.
  "잔인한 질문을 하시는군요."
  "그렇다면 자네도 미츠나리가 나쁘다고 썼겠군.  그렇지 않으면 보통 사람들이 납득하지 않을 테니까, 사람들은 타이코를 좋아하거든."
  "모두에게 사랑받는 타이코도 자신의 눈이 어두워지고 있다는 것을 아신다면 이런 일은..."
  "그것이 원인일세 인간의 눈이 미치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어. 눈이 어두워지는 데는 나이도 그 원인이 되지만, 권력도 그 원인의  하나,

맹목적인 사랑도 그 원인의 하나지 . 그것은 그렇다 치고 우리 주군도 교활하셔 . 처형이 결정되고 나서야 상경하셨으니 ."
  이에야스는 사카이 타다카츠한테 처형의 모습을 자세히 보고받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만일 입을 연다면 무슨 말을 할까?'
  타다카츠는 알고 싶어 짓궂을 정도로 물었다.
  "타이코도 알고 보면 불행한 사람이야. 칸파쿠 역시 그렇고 "
  애매하게 말꼬리를 흐리고 그 이튿날부터 후시미 성 에 나갔다.
  사실 할말이 없었을 터  . 인간이 가진 업보와  업보의 충돌이었다고 본다면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 라 단정한다  해도 무의미 한 일이었다.

 비난받아 마땅한 점은 양쪽 모두에게 있고,동정할 점 역시 양쪽 모두에게 있었다.
  히데츠구의 처형이 끝난 뒤 히데요시의 노쇠와 조급함이 갑자기 눈에 띄기 시작했다.
  히데츠구를 할복하게 하고 나서 서둘러 조정에 칸파쿠  파면을 청원하는가 하면 쥬라쿠 저택을 당장 허물라는 엄명을 내렸다

그리고  마에다 토시이에를 히데요리의 사부로 결정했다면서 모두를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기도했다.
  그보다 더 익살스러운 일도 있었다. 명나라의  정사 이종성 일행이 조선 경성을 떠나 부산에 이르렀다는 보고를 들은 히데요시...
  "반가운 일이야. 경사스러운 일이야. 이제 전쟁은 끝나게 됐어 , 그런데 ,앞서 이야기가 나온 혼담 말인데... "
  일부러 이에야스를 불러 다짜고짜 요도 부인의 동생을  히데타다에게 밀어붙였다.
  요도 부인의 동생을 히데요시의 양녀로 삼아 시집보내겠다고 했다. 도쿠가와 쪽에서도 이미 그럴 각오였다 그런데도 이 강제적인 혼사에는

 지난날 이에야스에게 아사히히메를 떠 맡겼던 히데요시의 대담성도 무서운 패기도 느낄 수 없었다. 이에야스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 같은 비굴한,

그리고 이기적인 냄새가 풍겨 도리어 이에야스 쪽에서 가엾게 여길 정도였다.
  혼례식은 9월 17일에 거행되었다.  히데요시 측근 중에는 이를 기뻐하지 않는  자가 많았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이 혼례로 깊은 안도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에야스가 인척으로서 히데요시를 보좌하는 한 다이묘들은  히데요시에게 복종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강요한  일이 무난히 관철되었다고 기뻐하는 어리석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타이코도 이제는 정 말 늙었구나...'
  히데요시의 이 노쇠에 박차를 가한 직접적인 원인은 역시 히데츠구 사건이었다고 이에야스는 생각했다.
  아직 전투의 지휘라면 젊음이 되살아난 듯 의욕을  불태우는 히데요시.
그러나 혈육간의 다툼은 전에 없던 일인 만큼 몹시 타격이 컸던 모양이다.
9월 17일 요도 부인의 동생을 히데타다에게 시집 보낸 히데요시는  11월 초 세번째로 병석에 눕고 말았다.
  그것도 명나라 정사 이종성이 부산에 있던 코니시 유키나가와  더불어 어떻게 하면 성립되지 않을 화의를  얼버무릴까 하고

 먼저 도착한  심유경과 열심히 협의를 거듭하는 도중에...   그 무렵 후시미 성에는 쥬라쿠 저택에서 운반해온 다실과 기물에 히데츠구 처첩들의
망령 이 붙어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히데요시가 종종 엉뚱한 헛소리를 하기 때문이었는데 , 

그런 의미에서 천하인 히데요시 역시 보통사람과 별로 다를 것 없는 신경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었다...


<19권-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남긴 지세이 (유언)?>


"그 지세이는 이런 것이 라고 합니다. "


 " 이슬로 떨어지고 이슬로 사라질 이 몸이거늘..

  나니와 (오사카와 그 부근)의 영광은 꿈속의 꿈....


  코에츠는 가락을 붙이듯 타이코의 지세이라는 것을 읊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정말 가련하군요. 확고한 신념이 없는 자의  인생은 모두 이슬 중의 또 이슬, 꿈속의 또 꿈..."
  차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키타노만도코로까지도 그런 결심을 했다면 사태가 여간 심각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에 함부로 맞장구를 칠 수 없었다.
  한 시대의 방약무인한 영웅 히데요시는 케이쵸 3년 (1598) 8월 18일, 뒤에 큰 폭풍의 씨앗을 남긴 채 나이 예순 세살에 흙으로 돌아갔다.


<20권 - 히데요시의 장례식과 인생무상 그리고 미쓰나리의 결심>


이 증오하는 눈의 존재는 미츠나리는 결심을 더욱 확고하게 했다.
 
'그렇다, 내가 갈 길은 오직 하나뿐...'


  미츠나리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미츠나리는 자신의 결심을 새삼스럽게 확인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독경소리가 불당을 가득 메운 가운데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란 얼마나 기묘하고 불가사의한 것일까. 도대체 누가 언제 이'시간'을 흘려 보내기 시작한 것일까...?
  시간은 헤아릴 수 없는 영원한 과거로부터 영원한 미래를 향해 시시각각한순간도 쉬지 않고 흐른다.

 눈에 보이지 않고 때로는 그 안에 있는 자에게 느끼지 못하게 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 흐른다. 인간이, '지금'이라고 한 순간 '지금' 은 이미 흐르고, 내일도 내일이 되면 이미 '지금'이 되어 있다.
  '앞으로 두고 보자!'는 미래 역시 인간 각자의 희망은 나타낼 수 있어도, 과거가 된 뒤에 돌아 보면 그 얼마나 하찮고 익살스럽게 보이는 것일까.
  미츠나리의 눈앞에 있는 한 타이코는 위대한 거봉이었으며, 감히 범할수 없는 거인으로 보였다.

그러나 영원히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의 눈으로 본다면 어떤 답이 나올 것인가?
  타이코가 태어났다, 그리고 소년이 되고 장년이 되고 노인이 되었다가 죽어갔다...다만 이뿐이란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의 원한과 책략, 영달과 의지는 티끌 같다.

아니,인간 자체가 시간에 의해 키워지고 시간에 의해 죽음에 이르며 시간에 의해 잊혀지는 철칙 앞에서는 완전히 무력한 존재...

어제는 이미 어제가 아니고, 내일은 오늘이 되어 다시 어제로 바뀌어간다.
  미츠나리는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없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이 미츠나리 따윈 나뭇잎 하나에 지나지 않는 무일뿐...'
  인간이 있다고 믿는 것은 언제나 쉬지 않고 흐르는 '오늘의 바로 지금'뿐, 그 잠시도 쉬지 않는 '오늘의 바로 지금'을 영원인 줄 알고

착각하고 부질없이 웃고 울며 저주하고 탐욕을 부리다 죽음을 맞이한다.  생각해보면,

히데요시의 유지에 따른 조직을 붕괴한 장본인은 이에야스도 미츠나리도 아니고, 이 기괴한 시간의 소행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 시간 앞에 팔짱만 끼고 앉아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때 나츠카 마사이에가 미츠나리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지부 님, 분향을..."
  미츠나리는 천천히 일어나 이미 자기 앞에는 토시이에의 모습도 히데요리의 모습도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토시시에는 분향이 긑난 히데요리를 데리고 식장을 떠난 듯, 가장 윗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그의 숙적 이에야스 한 사람뿐이었다.
  미츠나리는 엄숙하게 부향하면서, 히데요시의 명복을 빈다기보다 '시간'에 바치는 분향이라는 생각을 했다.
  분향을 마친 뒤 돌아서서 똑바로 이에야스를 바라본 미츠나리는섬뜩했다. 어째서일까? 지금 그가 이에야스의 비대한 몸에서 받은 인상은

아까 식장에 들어올 때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밉지도 않다. 화도 나지 않는다. 압박감도 없었다.
  '그렇다, 이제는 죽일 수 있다. 과연 이것 이었구나...'
     독경은 2각 반 (5시간)쯤 계속 되었다. 잠시 쉬는 동안 미츠나리는 어째서 자기 마음이 이처럼 가벼워졌는가 하는

의문을 가슴에 남긴 채 이에야스의 뒤를 따라 호코사 객실로 들어갔다.

  지금까지는 '불구대천...'이란 감정이 앞서 이에야스에게 동석하기 조차 거북스러운 압박감을 느껴온 미츠나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태연히 그 뒤를 따라갈 수 있었다.
물론 이 자리에서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었다. 그럴마음이 있었다면 이처럼 태연할 수 없었을 터.

그런데도 마음속으로는 잔잔한 살의가 더욱 확고부동 해지는 것이 이상했다.
  그 살의가 결정적인 장소를 발견했기 때문에 거꾸로 마음이 태연함을 되 찾았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미츠나리는 아직 각오가 부족했었다. 자기 몸도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상대의 야심에 이를 갈며 증오하는 철저하지 못한 망집에 사로잡혀 있었다.

 

2016.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