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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삼국지 2권을 읽고서..

 

 

여포에게 끌려간 사공 장온은 오래잖아 목만 붉은 쟁반에 담겨돌아왔다. 아
직도 시뻘건 피가 흐르는 장온의 목을 본 여러 벼슬아치들은 놀라 혼이 다 빠져
나간 듯 그 까닭조차 묻지 못하고 벌벌 떨며 동탁의 눈치만 살피다 그걸 즐기듯
살피고 있던 동탁이 이윽고 만족하는 듯한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제공들은 놀라지 마시오. 장온이  원술과 한끈으로 이어져 몰래 나를 해하고
자 하였소. 사람을  시켜 원술에게 보낸 밀서가  잘못하여 내 아들 봉선의 손에
들어가는 바람에 일이 드러난 것이외다. 역적의 목을? 것은 그런 까닭이 있어서
이니, 무고한 공들은 놀라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소] 너무도 조용하고 부드러
워 오히려 듣는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목소리 였다. 그 자리에 있던 뭇 벼슬아
치는 하나같이 더 이상 자세한 까닭을 캐물 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술잔만 비우
다가 동탁이 미오성으로 돌아간 뒤에야 말없이 쫓기듯 없어졌다. 살펴보면 동탁
이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즐겨 사용한 수단은 공포였고 그의 통치는 이른바
공포 정치인 셈이었다. 하지만 백성들을 위압하고 적대 세력을 꺾는 데에 그 어
떤 수단보다 빠르고 확실한 효과가 있는 것에 못지않개 계속되기 어렵고 결말이
위험한 것이 또한 공포  정치이다. 공포 정치가 계속되기 어렵다는 것은 인간의
감각이 가진 마비란 특성 때문이다. 다른 감각과 마찬가지로 공포감도 거듭되면
마비되게 마련이 다. 따라서 공포를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쪽은 거듭될수록 보다
강력한 자극을 줄  수 있는 걸 개발해야  하는데, 그것은 다만 보다 잔혹해지고
야만스러워지는 길뿐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이미 공포감이 마비된 백성 에게는
효과도 없이 이용하는 쪽만 광란적인 가학 심리로 몰아넣고 적대 세력에겐 한층
설득력 있는 대의명분을 무기로 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 다는 데 공포 정치의
한계가 있다. 공포 정치의  결말이 위험스럽다는 것은 언제나 공포 정치가 비극
적으로 끝난다는 데 있다.  정당한 승계가 아닌 권력의 상실은 대개 비극적이긴
하지만 공포 정치의 종말처럼  극단하지는 않다. 그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 사용
한 잔혹하고 야만적인 수단에 의해 무대에서 굴러 떨어지기 때문이다.

  역사에서는 아주 희귀한 예로  비극적인 결말을 모면한 경우가 있지만, 그 행
운이란 것도 결국은 죽음이란 자연의  비극적 결말이 적대 세력이나 더 참을 수
없게 격분한  민중들의 동해 보복을 대신했을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는 동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동탁이 휘두르는 공포란 철권에 질려 있는 것
같았지만 그가 틀어잡고 있는 조정에서도 이미 마비의 증상과 아울러 더 참을
수 없다는 격분의 분위기가 일고 있었다.